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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년(선조2)∼1631년(인조9) = 63세]. 조선 중기 선조~인조 때 활동한 문신. 자는 수지(守之)이고, 호는 장곡(藏谷)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교리(校理)권춘란(權春蘭)의 양자이고, 학봉(鶴峯)김성일(金誠一)의 사위이다. 처음에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구봉령(具鳳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31세이던 1599년(선조32)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1602년(선조34) 병조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옮겼다가 이조 좌랑이 되었으나, 병이 나서 사직하였다. 1603년(선조35) 이조 정랑이 되었다가, 홍문관으로 옮겨서 교리(校理) · 응교(應敎)로 승진하였고, 1607년(선조40) 영덕현령(盈德縣令)으로 나갔다. 그때 큰 치적을 올려서 선조로부터 옷을 하사받았다. 1607년(선조40) 성균관 사성(司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사헌부 집의(執義) · 홍문관 응교에 각각 두 번씩 임명되었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국장도감(國葬都監)의 도청랑(都廳郞)이 되었으며, 장례(葬禮)가 끝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였다. 중앙 정부에 있던 아버지 친구 유성룡(柳成龍) · 장인 김성일 등이 그를 동인(東人)의 인재로서 밀어주었던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자청해서 풍기군수(豐基郡守)로 나갔고, 1615년(광해군7) 동부승지(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가,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승진되었다. 경주부윤(慶州府尹) · 영해부사(寧海府使)로 나갔다가, 1623년(인조1) 좌승지(左承旨)에 임명되었다. 이어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갔다가 병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며,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형조 참판에 임명되었다. 1630년(인조8) 대사간(大司諫)으로 승진하여, 명(明)나라 도독(都督)황룡(黃龍)의 접반사로서 모문룡(毛文龍)의 가도(椵島)에 다녀오던 도중에 1631년(인조9) 7월 정주(定州)에서 객사하였다.
저서로는 『장곡집(藏谷集)』이 있다.
묘소는 경상도 안동(安東) 사니산(師尼山) 덕여동(德輿洞)에 있고,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비명(碑銘)이 남아있다.
출처 - 위키 실록사전
도서명 | 장곡(藏谷) 권태일(權泰一) 선생의장곡선생문집 (藏谷先生文集) 권지 1.2.3 單 목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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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장곡 권태일 |
출판사 | 목판본 |
크기 | 가로20센티 세로30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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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구성 | 상품페이지 참고 |
출간일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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